럭키금성부터 FC서울까지 골키퍼 특집
FC서울에서 활약하며 K리그를 대표했던 역대 골키퍼들의 계보를 알아보자
FC서울은 지난 1983년 8월 18일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이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12월 22일 공식적인 창단식을 거행하며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프로 축구단으로 출범한 FC서울은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명품 골키퍼들을 배출해냈다. 1985년과 90년 그리고 2000년대 총 3번의 우승까지 도합 5번의 K리그 우승을 기록했던 FC서울에 중심에는 BEST11에 선정되며 빛나는 활약을 보여줬던 골키퍼들이 있었다. 85년 우승의 주역이자 시즌 MVP에 선정된 당시김현태 선수를 필두로 89년 BEST11 골키퍼 차상광 FC서울을 넘어 K리그 레전드 신의손과 꽁지머리 김병지 마지막으로 2번의 우승을 기록한 용대사르 김용대까지 FC서울의 우승에는 명품 골키퍼들이 함께했다. 언제나 묵묵하게 경기장 가장 뒤편에서 선수들을 독려하며 경기를 지휘한 골키퍼들 이제 FC서울에서 활약하며 K리그를 대표했던 역대 골키퍼들의 계보를 알아보자.
1985년 시즌 MVP와 BEST11 골키퍼 상을 동시 석권한 원클럽맨 김현태
1985년 감격스러운 FC서울의 창단 첫 우승에는 태국출신의 슈퍼스타 피아퐁이 있었다. 최전방에서 멋진 활약을 선보이며 득점왕과 도움왕을 최초로 동시 석권하는 대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에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시즌 종료이후 진행된 1985년 K리그 시상식의 주인공은 MVP와 BEST11 골키퍼 상을 동시 석권한 원클럽맨 FC서울의 골키퍼 김현태였다.
현 FC서울의 스카우트 팀장으로 활동 중인 김현태는 1961년 태생으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FC서울 입단이래 114경기에 출전 151골만을 허용하며 1991년까지 8년간 명품 골키퍼로 활약했다. 180CM의 신장으로 골키퍼라는 포지션선 다소 작은 키일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선방능력을 선보인 김현태는 85년과 86년 2년 연속 K리그 BEST11 골키퍼상과 최고의 우수 골키퍼 상을 수상하며 FC서울과 K리그를 대표하는 명품 골키퍼로 활약했다.
역대 아시안컵 A매치 최연소 출장의 주인공 김봉수
만 18세의 나이로 AFC 아시안컵 A대표 팀에 소집됐던 김봉수는 90년대 FC서울의 골키퍼로 꾸준한 활약을 선보였다. 고려대학교 1학년 재학시절 당시 이회택 감독은 베테랑 조병득과 함께 신인 김봉수를 선택했다. 12월 11일 이란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역대 아시안컵 A매치 최연소 출장기록을 경신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김봉수는 이란을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하며 깔끔한 A매치 데뷔전을 기록했다.
이후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김봉수는 1992년 FC서울에 입단한다. 당시 K리그의 대표 골키퍼로 활약하던 김현태의 사실상 은퇴와 직전시즌까지 주전으로 활약하며 89년 BEST11 골키퍼 상을 수상했던 차상광 선수가 포항으로 이적하며 기회를 잡게 된다. 14경기에 출전하며 13실점으로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되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1993년 7경기만을 소화하며 조금은 아쉬운 시즌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끈질김과 안정감으로 99년까지 꾸준하게 활약하며 총 113경기를 소화해낸다.
K리그 최고의 골키퍼 영입 사리체프 신의손
지금까지도 K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는 러시아 사리체프는 타지키스탄 출생으로 K리그 무대에 입성한다. 1992년 당시 성남으로 이적하며 K리그 무대에 데뷔한 신의손은 1998년까지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했다. 이후 계속되어 유입되는 외국인 골키퍼를 제한하고자 규정이 변경되기에 이르자 선수생활을 뒤로하고 FC서울의 골키퍼 코치로 입단하며 1999년 귀화를 신청한다. 그리고 2000년 구리신씨의 시조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신의손은 플레잉 코치로서 그라운드에 복귀하게 된다.
1년간의 공백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의손은 FC서울 소속으로 2000년 K리그 우승과 2001년 슈퍼컵 우승에 일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2000년 K리그 BEST11 골키퍼 부문에 선정되며 부활을 알린 신의손은 2001년 슈퍼컵 우승을 바탕으로 2년 연속 BEST11 골키퍼 상을 수상한다. FC서울 소속으로 130경기에 출전하여 142골만을 허용한 신의손은 평균 실점 1.09를 자랑하며 대활약했다. 은퇴이후 2005년 FC서울의 골키퍼 코치로도 활약했던 신의손은 K리그의 최고의 골키퍼이자 2000년 3번째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다.
꽁지머리 김병지의 영입
최근 현역생활 은퇴를 발표하며 수많은 축구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던 김병지는 신의손이 은퇴하고 새로운 골키퍼의 영입이 필요했던 FC서울에 2006년 영입된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꽁지머리 김병지는 이적과 동시에 2006년 삼성 하우젠 컵 우승에 공헌하며 그 기대에 부흥했다. 2006년 5월 10일 경남과의 K리그 13라운드에서 통산 2번째 프로 400경기 출장기록을 세운 김병지는 나날이 자신의 최다 출장 기록을 갱신하며 그 해 K리그 한 시즌 최다 무실점 21경기를 기록하며 대활약했다.
2007년 10월 K리그 인천과의 경기에서 원정 풀타임을 기록한 김병지는 152경기 무 교체출장기록을 갱신하며 전설을 만들어갔다. 당시 기성용과 이청용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로 팀을 재건하고 있던 귀네슈 감독은 베테랑 김병지의 리더십으로 더욱 안정감 있는 FC서울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해 K리그 BEST11 골키퍼 부문에 선정된 것은 물론 K리그 특별상과 스포츠 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수비상까지 수상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2008년까지 활약하며 3년간 91경기 출장 73실점을 기록하며 평균 실점 0점대를 선보인 김병지는 2000년대 중반 K리그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키퍼로서 FC서울에서 맹활약했다.
용대사르 김용대의 화려한 등장
FC서울은 2009년 김병지의 이적이후 김호준을 비롯한 젊은 골키퍼들의 활약했지만 저마다 조금씩의 아쉬움을 남기며 아쉬운 한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2010년 FC서울은 팀의 중심을 잡아줄 골키퍼로 당시 상무 축구단에서 군복무 중이었던 성남의 김용대를 영입한다. 연세대학교 졸업이후 2002년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여 2004년 FA컵 우승에 주역으로 활약한 김용대는 2006년과 2007년 소속팀 성남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선사했다. 하지만 2010년 신태용 감독이 주전 골키퍼로 정성룡을 낙점하자 시즌을 앞두고 FC서울로 이적한다.
김용대는 이적 직후 곧바로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차며 10년만의 K리그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다. K리그 우승은 물론 리그 컵에서도 맹활약하며 더블의 위업에 혁혁한 공을 세운 김용대는 2010 K리그 BEST11 골키퍼 부문에 선정되며 최고의 한해를 맞이한다. 2012시즌에도 전북과의 치열한 순위경쟁 끝에 우승을 차치한 FC서울의 주전 수문장으로서 다시 한 번 K리그 BEST11에 선정된 김용대는 이듬해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의 공신으로 활약하며 ACL BEST11에까지 선정되는 겹경사를 누리게 된다.
2016시즌 울산으로의 이적 이전까지 김용대는 2번의 K리그 우승과 한번의 FA컵, 리그컵 우승 그리고 각각 한번씩 챔피언스리그와 FA컵 준우승을 기록하며 6년간 활약했다. FC서울 골키퍼로 가장 많은 220경기에 출장하며 평균 실점 1.1을 기록한 김용대는 울산에서 활약중인 지금까지도 많은 FC서울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1983년 창단이후 FC서울의 5번의 우승에는 팀의 최후방에서 묵묵하게 골문을 지켰던 골키퍼들의 활약이 있었다. 1985년 첫 번째 우승의 주인공 김현태 골키퍼를 필두로 최무성과 김봉수는 90년대 FC서울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줬다. 그리고 2000년대 신의손과 김병지 김용대로 이어지던 명품 골키퍼 계보는 2016최고의 한해를 보내고 있는 유상훈 선수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FC서울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명품 골키퍼 계보가 계속하여 이어지기를 희망한다.